1.유대인의 대적(12-13절)
유대인들은 합심하여 바울을 대적합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복음을 약화 시키기 위하여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틀리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함에도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진리 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닥쳐올 환란이나 핍박이 두려워서 올바르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진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들과 타협하기 위하여 변질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더욱 더 위험한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복음에 관한한 타협이나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그의 앞을 가로 막아도 그는 복음을 온전하게 전하였고 그렇게 행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언제나 온전한 복음전파와 바른 믿음생활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가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들 앞에서 슬리하는 삶을 사는가?
2.불의한 사람들(14-17절)
바울에 대한 고소 사건은 총독 갈리오에 의해서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로마법을 어긴 것이 아니기에 총독은 그들을 법정에서 내어 보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화가 나서 회당장 소스데네를 폭행했습니다. 그것도 법정 앞에서 행하였습니다. 총독 갈리오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묵인해 주었습니다.
갈리오는 바른 재판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무고하게 바울을 고소하고 소스데네를 폭행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의를 구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안정에 무게를 주는 그릇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갈리오의 이중적 태도를 통하여 세속권력이 가진 불의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정의를 주장하는 권력이라고 하여도 세속권력이 가지는 이중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온전히 정의로우신 재판관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이 땅에서 행하여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도가 선 땅에서 성경적 정의를 실현하여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불의한 세상 속에서 바른 정의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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