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20)
20절을 보면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는 인생의 제 일 본분이 무엇인지 잘 교훈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며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대 홍수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생사화복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과 그러한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수고도 허무만 남긴다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설정하고 있습니까? 혹시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설정 없이 우리 자신의 일에 더 열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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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앞에 단을 쌓는 일을 가장 우선적으로 하며 사는가?
2. 땅이 있을 동안에는(22)
22절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자연 법칙의 보존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해 보이는 자연 법칙까지도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간섭이 있기에 가능함을 알게해 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만일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붙들고 계신 말씀의 능력을 거두신다면 이 세상은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결국 멸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 법칙의 보존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은 “땅이 있을 동안에”만 자연 법칙을 보존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현세상이 존재하지 않게 될 때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이 분명하게 현세상의 끝이 있을 것과 그 끝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도래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 24:3, 27-31)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자와 같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라지고 말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장차 이 세상이 멸망된 후 새롭게 조성될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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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어진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예화) 예배와 행복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당신 평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한참 눈을 감고 회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하던 어떤 주일이었죠. 그때 나는 졸병이었지만 아침에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예배에 빠지기 시작하였고 지금 전쟁에서 패배하여 이처럼 유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여야 합니다.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순간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순간입니다. 예배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최고의 행복이요,가치요,극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예배를 회복하고 존중히 여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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