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3)
본문의 족보는 아담 한 가정의 역사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담에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전개 과정을 보여줍니다. 1,2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아담은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형상”이란 “누군가를 원본으로 찍어 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창조되었습니다. 반면 아담의 자손은 아담의 모습을 닮게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닮았다”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인격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범죄하기 이전의 완전한 인격을 말합니다. 반면 “아담의 형상”은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죄인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은 전인격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게 됨으로 인해 완전한 하나님의 인격을 닮은 후손을 생산하지 못하고 오직 파괴되거나 변형된 하나님의 형상 곧 타락하고 부패한 인격을 가진 존재만을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죄인이라고 선포합니다.(롬 3:10,23)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 구원에 이를 만한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입니다.
묵상하기
하나님께서 베푸신 무조건적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가?
2.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24)
본문 4-32절을 보면 아담의 계보를 소개하면서 “죽었더라”는 말을 8차례 반복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 이래 인류가 짊어진 숙명적인 짐입니다. 왜그렇습니까? 그것은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 6: 23) 그러나 21-24절을 보면 에녹의 기사가 나옵니다. 24절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와 관련해서는 죽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화해와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죽음으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예표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골 1:20) 에녹의 승천 사건은 하나님 안에 영생의 소망이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요 17:3) 우리의 삶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낳고…죽었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비극적인 운명이 영생의 소망을 가진 인생으로 바뀝니다.
묵상하기
나는 영원한 생명을 부여 받았음에 감사하는가?
(예화) 늘 함께 하는 행복
늘 바빠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아버지가 있었다.하루는 그의 어린 아들이 편도선 수술을 받았다.아버지는 아들 곁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고 보살펴주고 놀아주었다.하루가 지날 무렵,아이는 아버지에게 『오늘 너무나 기뻤어요』라고 말했다.『수술해서 목이 아프고 힘들었을텐
데 무엇이 그렇게 기뻤니?』 아버지가 묻자 꼬마는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빠가 온 종일 저와 함께 계셨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온 생애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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