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질의 회복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감히 성령님을 속이려다 베드로 사도앞에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일이후 성령님의 역사는 더욱 더 왕성하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결국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많은 사람들앞에서 증거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인정이나 사사로운 생각에 끌리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쫓았을때 성령님의 역사는 더욱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착오없이 지키게 될때 성령님은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믿음의 원칙을 지키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쫓을때 우리에게 더욱 더 큰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참된 성장
성령님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성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 이후에 놀라운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성장은 오직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영적인 칭송을 받고 성도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갈망할 때 성령님의 역사는 더욱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교회의 성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장 주요한 요소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안에서 사람들에게 칭송받을 수 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갈때 우리 교회는 자연적으로 성장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실 때 항상 영적인 본질을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날마다 영적성장의 열매를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예화) 부흥케 하는 성령(행 2:38)
대 로마 제국의 박해를 극복하고, 예수의 복음으로 천하를 점령한 것은 힘으로 한 것도 아니며, 능으로 한 것도 아니라, 성신으로 한 것이다. 루터와 칼빈이 로마교의 미신을 때려 부시고서 복음주의 교회를 재흥한 것은, [도이취] 의 힘도 아니고, 영국인의 정치능도 아니며, 성신에 불타는 [퓨리탄] 정신이다. 18세기 산업혁명후에 부패막심한 영국의 정신계를 혁신한 것은 요한. 웨슬리가 모라비아의 기도단에서 받은 성신의 불의며, 1907년의 한국 교회의 대부흥은 길 선주 목사에게 임하신 성신의 불이다
(부흥케하는 성령을 받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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