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uare14_green.gif 성령받은 증거는 무엇인가?
 조회수 : 219 / 등록일 : 2025년01월03일 / 글쓴이 (E-mail) : vppchoi59

“성령을 받은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있어서 성령은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만큼이나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온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는 이들의 모든 고백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종교 감정과 이성으로도 접근이 가능할 정도로 역사적인 진실 및 공감할 수 있는 진리가 가득합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시인하는 이들 중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음이 아닌 단지 종교 감정이나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반응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미혹하는 영에 사로잡혀서도 성령 받은 것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고후서 11:14,15 참조)



기독교 관련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는 성령으로 믿는 것과 거의 흡사한 열심, 충성, 확신이 있지만 그들의 종교적인 형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들의 모든 고백을 성령으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성령은 사람의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도 않아서 신앙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과연 자신에게 성령이 계신 증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명료하게 제시 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나서 많이 변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수월해 졌고, 신앙생활이 즐거워졌다” 등등 자신들이 믿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설명하려 하지만 이런 증거들이 있다고 해서 꼭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볼만한 뚜렷한 증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이런 정도의 변화는 굳이 성령의 역사 말고라도 인간의 종교 감정의 역할, 이성적인 각오와 결단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함께 계신다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에는 영적 존재인 사탄이 맨 처음 인간들에게 접근하여 인간들을 사로잡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래 영적 존재인 사탄이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없었지만 사탄의 꾐에 빠져서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 영적 존재인 사탄에게 사로잡혔고 그로부터 모든 인간들은 사탄의 지배하에 놓여 끄는 데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도, 양심도, 육체의 감각과 행동마저도 완전히 사로잡아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롬5:21 참조)



사탄이 사람에게 들어와 죄와 세속적인 타락에 빠지게 하였다면 그 사탄에게 사로잡혔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인간이 사탄에게 사로잡혔을 때 일어났던 전혀 정반대의 현상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금껏 죄로 왕 노릇하며 주인 노릇을 하던 사탄의 권세가 약화되어 사탄의 지배하에 짓눌려있던 마음, 지각, 육체의 감각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성령의 인도와 다스리심이 시작됩니다.



사람을 빈 집으로 본다면 지금껏 추하고 악한 주인이었던 사탄이 쫓겨나고 거룩하고 선하신 성령께(예수그리스도로 표현해도 무방함)서 새 주인이 되어 그리스도인들을 다스리기 시작하십니다.



가히 ‘천지개벽’ 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할 만한 대 변혁이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받기 전과 후의 극명한 차이는 성령이 오시기 전인 사도행전 2장 이전의 사도들 및 성도들과 성령을 받은 사도행전 2장 이후 쭉 이어지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비교가 됩니다.



영적 존재인 사탄이 인간에게 들어와 단번에 사람을 타락시켰듯이 영이신 성령이 사탄에게 사로잡혀있던 사람에게 임재하게 될 때 사탄이 사람에게 끼친 그것과 전혀 정 반대의 영향을 단번에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셨도다”(엡4:8)



사탄에게 사로잡혀있던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로잡으실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며 이러한 말씀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의 성령강림으로 완전히 응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해집니다.

성령께서 신자들로 하여금 단지 입만 ‘달싹여’ 신앙 고백을 하는 것으로 만족을 하시지 않을 것이며, 절실하게 순종할 마음도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어찌할 수 없어서 끊임없이 무시를 당하는 불편한 동거를 하시려고 거룩하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오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완전히 내주하시기 이전 단계의 성령 역사가 있음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순종하지 않는 이들에게 바른길을 밝히 비추시어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끄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지만 아직 이 단계는 성령의 내주하심의 단계가 아니라 내주하시기 위한 전 단계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 중에는 성령의 인도를 계속 불순종하므로 성령께서 그들에게서 완전히 떠나실 수도 있기에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은 아직 성령을 받았다는 표현은 맞지 않으며 단지 성령의 비취심과 책망을 듣는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직 성령께서 내주하신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런 이들의 순종, 불순종의 여부에 따라서 성령은 그들에게서 완전히 떠나실 수도 있는 사실상 피를 말리는 듯한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있지만 불순종하는 이들은 그 위기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이중적인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계시록 7교회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에베소 교회에 관하여는 처음 사랑을 회복치 않을시 촛대를 옮기리라 하셨고, 버가모 교회에 대하여는 속히 회개치 않으면 주님께서 회개치 않는 이들을 대적하여 싸우시겠다 하셨으며,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은 토하여 내시리라는 무서운 경고를 내리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교회들은 주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다가 얼마 후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시므로 순종하지 않는 교회나 신자들에 대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무섭게 진노하시는가를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께서 오심은 사람의 힘으로 사탄을 대적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바른 믿음을 가질 수도 없기에 성령께서 힘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인데 그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곧 사탄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두려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책망과 이끄심에 순종하여 지금껏 고집하던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성령께 자신을 완전히 맡겨드리게 될 때 성령께서 충만으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시게 됩니다.(사도행전 2장에서부터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변화이며 역사에서도 특별한 성령의 임재는 사도행전의 성령 역사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남)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신앙생활에 약간의 열심을 내는 정도나 전보다 좀 나아진 정도를 훨씬 넘어서서 거의 ‘천지개벽’ 에 버금가는 대 변혁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아담의 ‘죄성’이 펄펄 끓는 육체와 옛 자아가 완전히 도말된 것은 아니지만 성령은 이런 것들이 전처럼 왕 노릇 하지 못하도록 선제적인 지혜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고 또 강력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므로 끊임없이 성령을 거스리던 육체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도 쇠하여지고 죽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고전 15:31, 골3:5참조)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믿어졌고 세속의 유혹에 흔들리지도 않았으며 믿음을 지키므로 세상에서 지불하는 수고와 환난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음을 사도행전의 기록들과 역사위에서 성령 충만을 받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성령을 받았다면서 여전히 의심하고, 세속의 유혹을 받으며 불순종하는 이들은 성경에 약속하신 성령과는 전혀 다른 ‘영’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위의 말씀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하는 말씀에도 비밀이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을 주님"""" 으로 믿어지는 """"진실한 신앙 고백"""" 을 의미하며 자신의 삶 조차도 주님께 온전히 맞겨 드리지 못하는 이들의
""""주여주여"""" 하는 고백까지 포함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 시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 고백과 받은 영에 대하여 성경을 근거로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적인 성령의 역사가 맞는지에 대하여..""""


성령께서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어떤 세속적인 유혹과 달콤한 죄악의 속삭임도 한 덩이의 배설물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는 것이 성경과 역사에서 분명하게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요 은혜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인도와 은혜는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 ‘소중함’은 성령의 인도와 은혜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매우 특별한 ‘소중함’입니다.





“성령을 받은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있어서 성령은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만큼이나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온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는 이들의 모든 고백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종교 감정과 이성으로도 접근이 가능할 정도로 역사적인 진실 및 공감할 수 있는 진리가 가득합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시인하는 이들 중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음이 아닌 단지 종교 감정이나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반응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미혹하는 영에 사로잡혀서도 성령 받은 것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고후서 11:14,15 참조)



기독교 관련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는 성령으로 믿는 것과 거의 흡사한 열심, 충성, 확신이 있지만 그들의 종교적인 형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들의 모든 고백을 성령으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성령은 사람의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도 않아서 신앙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과연 자신에게 성령이 계신 증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명료하게 제시 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나서 많이 변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수월해 졌고, 신앙생활이 즐거워졌다” 등등 자신들이 믿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설명하려 하지만 이런 증거들이 있다고 해서 꼭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볼만한 뚜렷한 증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이런 정도의 변화는 굳이 성령의 역사 말고라도 인간의 종교 감정의 역할, 이성적인 각오와 결단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함께 계신다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에는 영적 존재인 사탄이 맨 처음 인간들에게 접근하여 인간들을 사로잡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래 영적 존재인 사탄이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없었지만 사탄의 꾐에 빠져서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 영적 존재인 사탄에게 사로잡혔고 그로부터 모든 인간들은 사탄의 지배하에 놓여 끄는 데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도, 양심도, 육체의 감각과 행동마저도 완전히 사로잡아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롬5:21 참조)



사탄이 사람에게 들어와 죄와 세속적인 타락에 빠지게 하였다면 그 사탄에게 사로잡혔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인간이 사탄에게 사로잡혔을 때 일어났던 전혀 정반대의 현상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금껏 죄로 왕 노릇하며 주인 노릇을 하던 사탄의 권세가 약화되어 사탄의 지배하에 짓눌려있던 마음, 지각, 육체의 감각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성령의 인도와 다스리심이 시작됩니다.



사람을 빈 집으로 본다면 지금껏 추하고 악한 주인이었던 사탄이 쫓겨나고 거룩하고 선하신 성령께(예수그리스도로 표현해도 무방함)서 새 주인이 되어 그리스도인들을 다스리기 시작하십니다.



가히 ‘천지개벽’ 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할 만한 대 변혁이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받기 전과 후의 극명한 차이는 성령이 오시기 전인 사도행전 2장 이전의 사도들 및 성도들과 성령을 받은 사도행전 2장 이후 쭉 이어지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비교가 됩니다.



영적 존재인 사탄이 인간에게 들어와 단번에 사람을 타락시켰듯이 영이신 성령이 사탄에게 사로잡혀있던 사람에게 임재하게 될 때 사탄이 사람에게 끼친 그것과 전혀 정 반대의 영향을 단번에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셨도다”(엡4:8)



사탄에게 사로잡혀있던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로잡으실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며 이러한 말씀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의 성령강림으로 완전히 응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해집니다.

성령께서 신자들로 하여금 단지 입만 ‘달싹여’ 신앙 고백을 하는 것으로 만족을 하시지 않을 것이며, 절실하게 순종할 마음도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어찌할 수 없어서 끊임없이 무시를 당하는 불편한 동거를 하시려고 거룩하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오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완전히 내주하시기 이전 단계의 성령 역사가 있음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순종하지 않는 이들에게 바른길을 밝히 비추시어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끄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지만 아직 이 단계는 성령의 내주하심의 단계가 아니라 내주하시기 위한 전 단계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 중에는 성령의 인도를 계속 불순종하므로 성령께서 그들에게서 완전히 떠나실 수도 있기에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은 아직 성령을 받았다는 표현은 맞지 않으며 단지 성령의 비취심과 책망을 듣는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직 성령께서 내주하신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런 이들의 순종, 불순종의 여부에 따라서 성령은 그들에게서 완전히 떠나실 수도 있는 사실상 피를 말리는 듯한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있지만 불순종하는 이들은 그 위기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이중적인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계시록 7교회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에베소 교회에 관하여는 처음 사랑을 회복치 않을시 촛대를 옮기리라 하셨고, 버가모 교회에 대하여는 속히 회개치 않으면 주님께서 회개치 않는 이들을 대적하여 싸우시겠다 하셨으며,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은 토하여 내시리라는 무서운 경고를 내리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교회들은 주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다가 얼마 후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시므로 순종하지 않는 교회나 신자들에 대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무섭게 진노하시는가를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께서 오심은 사람의 힘으로 사탄을 대적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바른 믿음을 가질 수도 없기에 성령께서 힘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인데 그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곧 사탄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두려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책망과 이끄심에 순종하여 지금껏 고집하던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성령께 자신을 완전히 맡겨드리게 될 때 성령께서 충만으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시게 됩니다.(사도행전 2장에서부터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변화이며 역사에서도 특별한 성령의 임재는 사도행전의 성령 역사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남)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신앙생활에 약간의 열심을 내는 정도나 전보다 좀 나아진 정도를 훨씬 넘어서서 거의 ‘천지개벽’ 에 버금가는 대 변혁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아담의 ‘죄성’이 펄펄 끓는 육체와 옛 자아가 완전히 도말된 것은 아니지만 성령은 이런 것들이 전처럼 왕 노릇 하지 못하도록 선제적인 지혜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고 또 강력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므로 끊임없이 성령을 거스리던 육체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도 쇠하여지고 죽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고전 15:31, 골3:5참조)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믿어졌고 세속의 유혹에 흔들리지도 않았으며 믿음을 지키므로 세상에서 지불하는 수고와 환난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음을 사도행전의 기록들과 역사위에서 성령 충만을 받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성령을 받았다면서 여전히 의심하고, 세속의 유혹을 받으며 불순종하는 이들은 성경에 약속하신 성령과는 전혀 다른 ‘영’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위의 말씀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하는 말씀에도 비밀이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을 주님"""" 으로 믿어지는 """"진실한 신앙 고백"""" 을 의미하며 자신의 삶 조차도 주님께 온전히 맞겨 드리지 못하는 이들의
""""주여주여"""" 하는 고백까지 포함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 시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 고백과 받은 영에 대하여 성경을 근거로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적인 성령의 역사가 맞는지에 대하여..""""


성령께서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어떤 세속적인 유혹과 달콤한 죄악의 속삭임도 한 덩이의 배설물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는 것이 성경과 역사에서 분명하게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요 은혜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인도와 은혜는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 ‘소중함’은 성령의 인도와 은혜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매우 특별한 ‘소중함’입니다.




""""땅긑으로"""" 님의 글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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