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uare14_green.gif hy6107
 조회수 : 328 / 등록일 : 2017년03월22일 / 글쓴이 (E-mail) : hy6107

나는 기도라는 책에서 성령을 인격화하자라는 말을 듣고 ‘아’ 라는 말과 함께 깨달았다.
그건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신것이다 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성령님을 보았다
20대 초반인가 중반인가 할 것이다
그때 나는 성령님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면 직접적으로 말을 하자면 나는 방석을 따로 하나 준비를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 집에서는 그의 자리가 있었다.
주일에 교회를 갔는데 성령님이 따라오셨고(?) 그에겐 자리가 필요했지만 내 옆에나 엄마 옆에는 자리가 없어서 내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두 번째 정도의 자리가 비어서 거기로 않으라고 권유를 했다
그래서 그는 거기에 앉으셨고 나를 보는 그는 아이가 되었다.
나를 보는 그는 아이가 되어서 웃고 장난을 치는 아이 같았다. 하지만 나는 목사님 설교시간이라고 앞을 보라고 속으로 말을 했고 그는 목사님을 바라보았다. 목사님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는 나보다 큰 젊은 남자였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아이였다.
그게 다였다.
벌써 나는 36세이다 다시 방석은 샀지만 다시 그를 볼수는 없었다
내가 바쁜건지 신경을 못쓰는 건지 방석에 눈이 가질 않았다.

저번엔 다른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는 한 남자가 죽어서 하나님께 갔다.
자기의 생애 모습은 모래위의 발걸음으로 나타났다.
언제나 하나님(예수님, 성령님)은 언제가 함께 같이 걸으셨다.
하지만 그 남자가 힘들고 지칠때 절박할 때 절망적일 때는 발자국이 한 줄밖에 없었다.
그는 하나님에 물었다. “왜 당신은 정작 필요할 때면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 소중한 사람아 발자국이 한줄밖에 없는 이유는 당신은 힘들고 지치고 절박할 때마다 내가 그대를 두 팔에 안고 걸어갔기 때문이다.”

성령님(하나님,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언제나 우리가 그를 보지 못할 뿐. 느끼지 못할 뿐.


soonkyoza
복음이 아니라 귀신의 궤변을 늘어 놓고 있네요.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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